‘화려한 꼬리 깃털을 갖고 있는 공작 수컷’을 떠올린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 깃털은 늑대 같은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띠어 잡아먹힐 위험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공작 수컷은 화려한 꼬리 깃털을 뽐낸다. 공작 수컷은 무엇을 위해 죽음의 위험조차 감수하는 것일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컷 공작의 행태는 ‘핸디캡 이론(Handicap Theory)’으로 설명된다. 이스라엘의 동물생태학자인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 박사는 ‘아라비아 노래꼬리치레(Arabian babbler)’라는 새의 무리를 관찰한 뒤 ‘핸디캡 이론’을 제시했다. 작은 무리를 이뤄 사는 ‘꼬리치레’는 천적인 매가 날아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아 보초서는 일을 서로 맡으려고 경쟁한다.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망을 보는 것은 매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가장 높지만 ‘최고는 남들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핸디캡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 적용되는 핸디캡 이론은 사람 사회에서 강조되는 지도계층의 책임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연결된다. 사회에서 부(富; 물질적 재산)와 귀(貴; 입신양명)를 얻은 사람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성원과 협력 덕분에 그런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솔선수범해서 실천해야 한다. 외적이 침입해서 국가가 위태로울 때 자발적으로 참전해서 나라 지키는 일에 목숨을 바치고,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자신의 재산으로 난국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잘 설명하는 것이 『주역(周易)』의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다. 익괘의 단사(彖辭)는 ‘손상익하 민열무강(損上益下 民說無疆)’이라고 설명한다. ‘위를 덜어 아래를 도우면 백성의 기쁨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에도 ‘만초손겸수익(滿招損謙受益)’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물은 한껏 차면 자만심이 생기므로 손실을 초래하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뜻이다.
재물은 물과 같다. 한 곳에 고여 있는 물은 썩어 쓸모없어지지만 흐르는 물은 대지를 적시고 만물을 키워낸다. 돈과 재물도 개인이나 소수 계층에 모여 있으면 재산분쟁(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고 집단 사이에 투쟁이 생겨 본인도 불행해지고 사회적 부의 크기도 줄이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면 투입된 돈보다 수십 수백 배의 재산을 만들 수 있다. 나눠주는 본인은 물로 도움 받은 사람과 사회 전체가 모두 행복해지는 마술이 일어난다.
공자는 『논어(論語)』 에서 ‘박시제중(博施濟衆)’을 강조했다.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능히 구제하는 것”은 요순(堯舜)도 박시제중 하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여길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